2017.08. 스페인 여행(1) - 바르셀로나 도착, 그리고 세비야




  동남아여행을 점점 많이 할수록 마음 한켠에는 "유럽은 비행기시간만 최소 10시간이니 퇴사를 해야만 갈수 있겠지"라는 아쉬운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2017년 뒤늦은 여름, 누구에게는 1주일이 짧은 시간일지 몰라도 1주일휴가를 받는것이 눈치보이는 직장문화속에서 결국 역마살을 참지 못하고 끊은 스페인행 비행기 티켓! 가격은 대략 130만원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뒤늦게 산 여름비행기 티켓이기도하고 김해공항-인천공항-바르셀로나공항 연결된 대한항공티켓이니 소소하게 따지고 보면 평타쳤던 가격인거 같다. 출국하기전 캐리어냐, 배낭이냐를 엄청 고민하다가 배낭을 들고간 이유는 도시간의 이동을 비행기로 할예정이였고 캐리어분실로 악명높은 부엘링항공을 이비자에서 바르셀로나 넘어갈때 한번은 탈꺼기에 짐분실에 대한 두렵이 엄습했다. 


  결국 carry on하기 용이한 배낭을 선택했고 배낭여행이기에 지인들 선물을 많이 사오지 못해 조금 미안했던 여행이였다.  



  공항에 내려 순환버스를 타고 제2터미널로 도착 후 그 유명한 T-10 교통카드를 샀다. T-10은 기간이 정해져있는것이 아니라 10회 횟수 차감으로 지하철,트램, 버스를 탈수 있는게 좋았다. 렌페(R2 nord)를 타기위해 기다리는 중   



  스페인 첫날의 호스텔은 최대한 공항과 가까운 곳을 예약해야 했었다. 그 이유는 다음날 이른아침 세비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색끝에 합리적인 가격과 위치를 생각하고 예약한 Mucha Masia Hostel Rural Urba

  

  진짜 늦은 밤에 체크인해서 잠만 자고 나온 곳이라 자세한 호스텔 후기를 쓸순 없지만 친절한 스텝, 나름 나쁘지 않는 가격, 공항과 가까움, 룸컨디션 모든 걸 고려했을 때 괜찮았다.  자세한 것은 ▶ https://muchamasia.com/en/




  아침 일찍 공항에 다시 가야했기에 조식은 커녕 일어나기도 버거웠던 하루, 그래도 굶주린 배는 채워야하니 조식으로 사먹었던 공항 츄러스는 참 맛있었다. 항상 스키장에서 설탕발린 길쭉길쭉한 것 츄러스만 먹다가 핫초코에 찍어먹는 츄러스란.. 더럽 츄러스    




 세비야공항에서 나와 구글링으로 황금탑(Torre del Oro)을 검색했다. 왜냐면 예약한 호스텔이 황금탑에서 가까웠기 때문이다.  세비야에 지낼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나름 의미가 있었던 건축물, 황금탑 


황금탑(Torre del Oro)

세비야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매력적인 탑. 

토레 델 오로, 즉 황금의 탑은 13세기 이곳을 지배하던 무어인들에 의해 알모아데 왕조 때에 세워졌으며, 세비야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 성벽의 일부이다. 열두 면으로 된 이 감시탑의 목적은 이 땅을 되찾아 자신들의 종교로 되돌리고자 했던, 무어인의 적인 기독교 세력을 물리치기 위한 요새 구실을 하는 것이었다.

이 탑은 과달키비르 강변 한쪽에 있는 항구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의 다른 편에도 비슷한 탑이 세워졌으며, 두 개의 탑 사이에 쇠사슬을 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아 적의 침입으로부터 이 항구 도시를 지켰다. 맞은편에 있던 탑은 지금은 없다. 16세기가 되자, 토레 델 오로는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그 일부분이 파손되었다. 1755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더 큰 피해를 입어 엉망이 되었는데, 이 지진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완전히 폐허로 만들었으며 스페인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1760년대에 들어 탑은 수리되었고 증축되었다. 탑 꼭대기에 빙 둘러 흉벽이 조성되어 전보다 한 채의 성과 같은 외관을 갖추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18세기와 19세기 두 차례에 걸쳐, 이 탑은 개발업자들에 의해 헐릴 위기에 처했으나, 두 번 다 여론의 반대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무사히 살아남았다.

토레 델 오로는 연한 색의 벽돌과 돌로 축조되었으며, 왜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이 탑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금박으로 덮여 있어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 빛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이보다 후에 스페인 함선들이 신세계에서 황금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이 탑을 황금 저장소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어인들이 통치하던 시대 이후부터 토레 델 오로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감옥, 예배당, 화약 저장고, 그리고 항구의 관리 사무소가 들어섰던 적도 있다. 오늘날 이 탑에는 작은 해양 박물관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세비야시내에는 트램도 지나가고 관광객들을 위한 마차도 있긴 하지만 알짜배기 관광지들은 다 도보이용이 가능해서 좋았던 여행지 중 하나이다.  




  호스텔에 짐을 놔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세비야 대성당 방문이였다. 가기전까지는 몰랐다. 이 작은도시에 있는 성당이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라는 것을  호스텔에 짐을 놔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세비야 대성당 방문이였다. 가기전까지는 몰랐다. 이 작은도시에 있는 성당이 유럽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라는 것을


세비야 대성당 [Sevilla Cathedral]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San PietroBasilica)이고 두번째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이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슬람 사원은 사라졌지만 넓은 폭의 형태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이다. 

1402년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되었으며 오랜 시기에 건축된만큼 고딕·신고딕·르네상스양식이 섞여 있다. 이곳에는 세비야를 이슬람교도로부터 되찾은 산 페르난도 왕을 비롯하여 에스파냐 중세기 왕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남쪽 문 근처에는 콜럼버스 묘가 있는데, 에스파냐의 옛 왕국인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관을 메고 있다. 이 관에는 콜럼버스 유골분이 안치되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세비야 대성당 [Sevilla Cathedral] (두산백과)



  유명한 성당인 만큼 미리 표를 예매하지 않으면 엄청 줄을 서야한다는 정보를 듣고 한국에서 예매하고 온 세비야성당 티켓

  자세한 것은 ▶ http://www.catedraldesevilla.es/




기대하지 않았는데 한국어 안내책자가 있어서 급 반가움


 





천장이 높아서일까 정말 커보였던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이 규모면에서 말고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대륙 발견의 창시자 콜럼버스의 관이 있기 때문이다. '죽어도 스페인땅을 밟지 않겠다'라는 그의 유언으로 인해 4개의 동상이 관을 떠받들고 있는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진정한 역마살 대선배를 만난거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순간

 


  한참 1층 내부를 구경하고 나서 세비야의 멋진 전경을 보기위해 히랄다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꽤나 경사가 있어서 조금 힘들었으나 위에서 바라보는 세비야의 전경이 너무 좋아서 누군가가 세비야여행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올라가 보라고 말할 것이다. 

  히랄다탑은 사진으로 보다시피 세비야 대성당과 연결되어 있어서 성당 밖을 나가지 않아도 바로 위로 올라 갈수가 있다. 사진을 더 보기 전 히랄다탑의 소개를 짧게 하자면 아래의 설명과 같다. 

세비야의 상징인 히랄다탑은 12세기 말 이슬람교도 아르모아드족이 만들었다. 원래는 이슬람사원의 첨탑이었으나 헐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다가 16세기에 기독교인들이 플라테스코 양식의 종루를 설치했다. 28개의 종과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으며, 탑의 이름을 풍향계를 뜻하는 히랄다라고 불렀다. 종루에서 보는 세비야의 풍경이 멋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안달루시아 지역이 날씨가 좋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아니면 이때 잠시 나는 날씨의 요정이였는가? 하여튼 뭉개구름들과 파란하늘, 거기에 걸맞는 햐얀 페인트가 칠해진 집들이 눈앞에 펼쳐졌을때 한참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비야의 멋진 전경을 보고 한껏 부푼 마음을 가지고 내려오는 데 이게 뭔가...우연히 보았던 한글 낙서! 진짜 어디가서 중국여행자 욕할게 못되는 부분 




  성당구경을 마치고 성당 밖을 나오길에 보이는 오렌지나무들, 녹음이 우거지구나라는 표현이 절로 나오는 길이라 덥지만 안았다면 계속 걸어도 좋았던 길이였다.   



  성당구경을 하다보니 어느덧 벌써 점심 때가 되었다. 그러고보니 스페인 도착 후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했다. 그래서 괜찮은 타파스 맛집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시에스타를 부르는 더운날씨로 그냥 눈에 보이는 타파스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저 눈에 보여서 들어간 곳이였는데 상그리아, 타파스 둘다 평타쳤던 가게, 그리고 이비자를 가기전까지 몰랐다. 세비야의 물가가 굉장히 혜자스럽다는 것을 





  여긴 상그리아 1jar가 10유로다.  혜자스러운 세비야  



  잠시나마의 야외테라스에서 여유를 즐긴 후 후식으로 젤라또 하나 사먹으며 걷는데 순간 자전거가 타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나 자전거 대여점이 있나 싶어 구글링을 하던 중 성당 근처에 자전거렌탈샵 하나를 발견했다. 



  몇시간을 렌탈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정확히 없으나 대충 3시간은 탔었던거 같다. 렌탈비용은 10유로! 하여튼 자전거도 이제 빌렸겠다 어디부터 가지? 라고 잠시 고민을 하던 끝에 버섯모양 건축물로 새롭게 떠오르는 세비야의 렌드마트 "메트로폴 파라솔"에 먼저 가보기로 했다.  


   

  걸어서는 12분, 자전거 타면 4분이라고 지도에선 말하지만 원채 호기심이 많이 나라서 그런지 오히려 자전거로 12분 걸려 도착한 메트로폴 파라솔







  히랄다탑에서 바라보는 세비야 풍경도 좋았지만 여기서의 풍경 또한 좋았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여기서 노을을 바라봤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시했었다. 입장료는 2017년 기준으로 3유로였으며 버섯모양의 지붕같은 건물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예쁜 풍경을 바라보는 묘미가 있어서 즐거웠던 곳! 


  

  메트로폴 파라솔을 보고 당충전을 위해 사먹은 젤라또 한스쿱! 지나고보니 스페인에서는 밥보다 젤라또를 더 많이 사먹었던거 같다.  젤라또는 먹고 난 후 다음 목적지는 세비야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인 세비야광장을 가보기로 했다.  






 

2014.08. 라오스 여행(2) - 방비엥

(Feat. 변하지 않았던 그때)



  오늘은 방비엥에서의 둘째날! 즉 내가 방비엥에 온 이유 중 하나인 카약투어를 하는 날이다. 지금이야 카약투어하는 여행사들이 방비엥에 많이 있겠지만 이때 당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사가 폰트래블 밖에 없었고 더군다가 동남아 혼자여행이 익숙치 않을때라 현지여행사 투어를 예약하기가 겁이 났었다. 


  하여튼 방비엥은 무척이나 작은 곳이니 폰트래블 여행사를 찾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은 아니라서 첫째날 직접 찾아가서 예약! 그리고 아침 9시까지 여행사 앞으로 오면 된다하여 어슬렁거리며 숙소 밖을 나섰다.


 

  내가 예약한 건 full day kayaking trip으로 코끼리 동굴구경, 머리에 렌턴끼고 튜브타고 물에 잠겨있는 동굴구경, 점심먹고 카약킹하는 코스로 지금에서 다시 보니 와놔....어쩐지 힘들더라... 카약킹을 3시간이나 했었다. 





 

  삼삼오오 투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지면 뚝뚝을 타고 어느 산골마을 같은 곳으로 가서 한참을 걸었던 거 같다. 길을 걷다보니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냥 걷기만 해도 좋았던 날





  

  코끼리 동굴인 이유가 정면으로 보이는 저 바위가 코끼리 모양이라고 해서 코끼리 동굴인데 사실 별 감흥이 없어서 빨리 렌턴 머리에 울러메고 워터동굴에 가던가 아니면 점심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다들 하나둘씩 렌턴을 받아들고 광부마냥 머리에 장착 후 동굴까지 연결되어 있는 줄을 잡고 튜브에 내 엉덩이를 의지한채 동굴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는 코스! 미친듯이 재미있는 건 아닌데 이런게 처음이고 어쩌면 같이 투어하는 외국인들이 익사이팅하게 소리질러줘서 재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동굴은 짧고 좁아서 다른 투어사에서 온 투어리스트들이 나올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까지 잊을 수 없는 볶음밥과 꼬지!! 진짜 JMT!!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사는 유쾌한 한국언니들!! 진짜 진정한 썅마이웨이 삶을 사는 언니들 때문에 외롭지 않았던 카약투어



  혼자여행와서 사진찍기도 참 그랬는데 언니들이 계속해서 찍어 준다해서 신나게 카메라 앞에서 쇼하던 모습 




  

  카약을 하면서 양옆으로 있는 돌산들과 구름, 파란하늘들은 장관을 이루었으나 역시 나는 이때부터 저질체력이였나 보다. 진짜 너무 너무 힘들었다. 다행히 비엔티엔에 하루 있을때 만났던 유럽피언애들이 방비엥에서 카약하면 꼭 긴바지 입고 하라며 너 만약에 긴바지 안입으면 우리처럼 될꺼다라고 하며 자기네들의 다리를 보여주는데 세상마상에 썬텐이 아니라 이건 그냥 화상입은 다리였다. 

  

  만약 비엔티엔에서 그들을 안만났으면 나도 아마 소시지구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게 예상되는 뜨거운 방비엥의 햇볕아래서 시간가는 줄 모른채 계속 노를 저었다. 


  

  카약을 하다보면 중간중간에 튜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보통 튜빙을 하다가 쉬고 싶으면 강가에 줄지어 있는 노천Bar로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Bar 직원이 1L생수통에 줄을 매달아 튜빙하는 사람한테 던져주고 사람들은 그 줄을 잡고 비엔나 소시지 마냥 물밖으로 나오는 시스템!  언젠가 나도 튜빙을 하면 저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강가 가게들이 불법이라고 없어졌다고 한다. 계속 글을 쓰면서 느끼는거지만 격세지감, 방비엥의 추억들!  



  튜빙하다가 Bar로 가서 맥주도 한잔하고 Bar 옆에는 발리볼을 할수 있는 네트도 있어서 남녀노소 가릴거 없이 신나게 노는 서양인들



  

  우리도 Bar에서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카약을 탔다. 이때 나는 다시는 내가 카약타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돈뎃에서 카약을 타고 이라와디 돌고래를 보기 위해 캄보디아까지 가는 투어를 했으니....나는 사람이 아닌가 봉가 






  도착지점에 다왔을 때쯤 하늘이 도왔는지 마침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다. 스콜이 미친듯이 퍼붓기 시작하니 물살들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튜빙하는 사람들이 세탁기 안에 있는 옷마냥 물살에 빨려들어가는 위험천만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잠시 쉬다가 저녁도 먹어야하고 방비엥에서의 마지막인 하루가 아쉬워 무작정 거리를 배회했다. 






  다시 꼭 라오스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게해준 추억은 대단한 장난감 하나 없이도 천진난만하게 깔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였다. 베트민턴을 치다가 저멀리 공이 떨어져서 내가 주워주니 수줍게 "컵짜이"라고 말해주는 소녀, 리어카바퀴 저거 뭐시라고 저걸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 


  

스콜이 오는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는 풍경




  거리를 생각 없이 배회하던 중 저멀리서 어디서 익숙한 얼굴의 한 백인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알고보니 비엔티엔에서 방비엥가는 미니벤을 탔을때 바로 내 옆에 앉았었던 잉글랜드인 알렉스!!! 

  갑작스런 급만남에 반가워서 '오늘 너는 뭐했니?'를 미주알고주알 말하다가 알렉스가 갑자기 자기 친구들이랑 저녁먹을 건데 같이 너도 갈래라고 말해서 나도 모르게 선뜻 그래! 라고 따라 갔더니 레스토랑에는 등발좋은 더치남자, 데인남자가 먼저 앉아 있었다.


  외국에 살아본적도 당연히 없거니와 일본, 말레이시아, 마카오 정도만 여행한게 전부였던 때라 백인남자들 사이에 둘러쌓여서 밥을 먹는다는게 공포로 잠시 다가왔었다. 

  그러나 내가 어색하고 불편할까봐 한국어로 cheers가 뭐냐고 물어보며 건배라고 말해주니 다같이 비어라오 한병씩 들고 '건배'라고 외쳐주고 최대한 천천히 영어로 말해주는 배려깊은 아이들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피지컬좋고 정말 잘생긴 더치친구! 저 친구 덕분에 언젠가 유럽여행을 하게 된다면 네덜란드는 굳이 가야하나라는 생각을 쌍그리 지우게 해주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본 유럽애들 중에서 저 친구보다 잘생기고 쏘스윗한 애를 본적이 없다. 라오스다음에는 미얀마로 간다고 했는데 저 친구 지금도 저 얼굴 유지하면서 잘살고 있을려나.....


 

  그렇게 Bar에서 포켓볼 칠사람은 포켓볼치고 나는 프리미어리그 보면서 맥주한잔 기울이며 온갖 국적의 사람들과 인사를 했던 밤 


  

  그렇게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브로큰 잉글리쉬가 한계에 치닫고 있을때 잉글랜드 친구 알렉스가 건너편 Bar로 옮겨서 놀자며 다시 다가왔다. 팔랑귀인 나는 별 고민없이 그의 뒤를 따라 갔는데 그곳이 나중에 그렇게 유명해진 사쿠라바 였다는 것을 추후 꽃보다 청춘을 보고 알았다. 


  사쿠라바에 들어서니 어느 또 커다란 미국인 아이가 말을 걸기 시작했고 자기의 고향은 디트로이드라고 말하길래 바로 내가 "에미넴"이라고 하니 새삼 반가운 표정으로 대면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비어퐁을 가르쳐주었고 이때 이후로 서양놀이문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오픈마인드 서양친구들 덕분에 서양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무너지게 된 밤이였다. 방비엥은 길거리에서 방금 본 사람을 또 마주칠 만큼 작은 시골마을이였지만 나에게 그곳은 나를 더 먼 나라로 데려다 주게 된 곳이기에 어느 도시와 견주어도 큰 시골마을, 방비엥!  


   


 

2014.08. 라오스 여행(1) -  비엔티엔 도착, 그리고 방비엥

(Feat. 변하지 않았던 그때)




  최근 추석연휴로 라오스남부지역인 팍세, 시판돈(돈뎃)을 다녀왔다. 2014년 8월 말이였던 첫 라오스여행은 짧은휴가로 인해 방비엥, 비엔티엔에서만 시간을 보냈지만 이 여행으로 인해 동남아여행은 여자혼자도 갈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시간만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배낭하나 둘러메고 잘 떠날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 나라, 나에게는 고마운 라오스  


  그러나 "꽃보다 청춘"이 방영하고 난 이후로는 너무나도 변해버렸다는 방비엥, 루앙프라방. 특히나 방비엥은 라오스의 가평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국인여행자가 대부분이고 그로인해 방비엥사람들의 순박한 눈빛들이 변해버렸다는 소리를 들었다. 

  좋았던 기억들이 많은 방비엥을 이번 연휴에 다시 가볼까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지금 다시 가면 좋았던 기억들이 망쳐질거 같았기에 결국 이번 연휴는 남부지역 여행을 선택했고 그 후기를 쓰기전 잠시나마 혼자 추억하고자 4년이 지났지만 방비엥, 비엔티엔의 여행일기를 쓰려고 한다.   



  지금이야 에어부산에서 비엔티엔 다이렉트 비행기가 있지만 2014년에는 다이렉트가 없어서 베트남항공을 타고 하노이를 잠시 경유해서 갔다. 그런데 얼떨결에 라오에어라인이랑 코드쉐어가 되어 라오에어라인도 타보게 되었던 좋았던 기억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밤7시쯤이 되었고 이때 당시 공항이 참 열악해서 수화물 찾는데 1시간이나 걸려 시간도 늦었고 그냥 공항에서 환전하고 숙소에 도착! 그때나 지금이나 숫자에 약한 나로써는 라오스 화폐단위는 계속 헷갈린다. 



  지금은 없어진 비엔티엔의 sihome guest house. 나름 우리나라 돈으로 1박에 7000원에 에어컨 딸리고 조식까지 주는 도미토리룸이여서 꽤 평타쳤던 곳



  이때 당시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인은 나혼자였으며 지금보다 더 발영어로 말하던 시절이라 참 외로웠던 여행 첫날! 그래도 뭐 여튼 그다음날 방비엥으로 떠나야하니까 게스트하우스 프론트로 가서 방비엥으로 가는 미니벤을 예약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미니벤 컨디션은 참 괜찮았다는 것을 인지 하지 못했다. 왜냐? 말레이시아 이후로 동남아는 여기가 처음이였기에 다 이정도의 미니벤 컨디션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때는 비엔티엔에서 방비엥까지 미니벤으로 3시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중간에 휴게소를 한번 들르게 되는데 라오스와서 처음으로 "쉼터"라는 한글을 보게되어 참 반가웠다. 







  3시간뒤 방비엥에 도착. 방비엥 메인거리에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곳에 나를 떨어트려주어서 한 10분에서 20분 정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우기가 끝날무렵이라서 방이 많이 남아 있겠지라는 생각에 방비엥 숙소는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해서 나름 론니플래닛에서 소개해준 "그랜드 뷰 게스트 하우스". 지금은 찾아보니 게스트하우스 이름이 바뀐듯 하다. 이제와서 영수증을 찾아보니 2박에 30.000낍이면 가성비 좋았던 곳 


  

  나혼자 잔다고 분명 말했는데 싱글침대, 더블침대 있는 방 주기 있기 없기? 편함과 동시에 침대2개로 인해 잠시 혼자의 외로움이 더 가중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외로움은 잠시고 게스트하우스 이름에 걸맞게 뷰가 너무 좋았다. 잠시 뷰를 감상하면서 저녁은 나도 저기 보이는 식당에서 먹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지금이야 블루라군가는게 여행패키지에 있는 듯 했으나 바야흐로 2014년에는 버기카, 자전거, 뚝뚝이로 가던 시절이였고 혼자 뚝뚝이를 타기에는 가격은 너무 비싸 결국 자전거를 빌렸다. 아마 아침부터 오후 7시까지 빌리는데 2000원에서 3000원 정도 했었던거 같다. 어떤 자전거를 빌릴까 한참 고민하던 중에 가방이랑 물병 보관이 용이 할것 같은 바구니달린 자전거를 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MTB 자전거가 아닌 일반 바구니 자전거가 나에게 어떠한 시련을 안겨다줄지 모른채 말이다.   



  

  자전거를 빌리고 콜라하나 살려고 가게에 들려 계산을 하고 나서는데 순간 미친듯이 스콜이 퍼붓기 시작했다. 타이밍 지리는 이 순간에 급 당황해서 이걸 어쩌나하고 멍때리던 중 나를 보며 손짓으로 있다가라고 말해준 친근한 가게주인 아주머니, 그리고 귀여운 딸

 라오스사람들의 순박함을 느끼기 시작했던 건 아마 이때부터 였던거 같다. 비가 오는게 마냥 좋은지 맨발로 밖을 나가려는 귀여운 아기와 나가지 말라며 웃으며 아기를 달래는 엄마 


  

  대충 현지인들에게 손짓발지 해가면서 묻고 물어서 블루라군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저멀리서 유럽피안으로 보이는 50대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대략 8km가 걸린다며 힘들지만 갈수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숫자 감각 없는 나는 또한 8km가 나에게 어떠한 숫자인지도 모른채 그냥 가면 되겠지라는 치기어린 패기를 원동력 삼아 자전거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나름 많이 간거 같은데 7km은 더 가야 나오는 블루라군  



 

  이정표를 보고 다시 길을 나서려던 중 갑자기 저멀리서 막대사탕을 든 아이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보고 지나칠려고 했으나 사탕껍질을 까지 못해서 껍질채 사탕을 먹을려는 아이들을 발견! 나도 모르게 까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바디랭기지로 사탕까는 모션을 보이니 한아이가 서슴없이 사탕을 나에게 주었고 바로 하나까서 돌려주니 나머지 아이들이 벌때처럼 저도나도 나에게 사탕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나 혼자 아이들 사탕을 까는게 버거워 보였는지 지나가던 근처 호텔직원도 나를 도와 같이 사탕을 까기 시작했다.  




  

  "컵짜이" 한마디씩하며 만족하며 다시 자기 갈길 가는 아이들. 낮선 이방인에게 의심의 눈초리 하나 없이 사탕까달라며 사탕을 건네는 순수한 아이들 덕분에 모르는 언어,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 했다.



  

  스콜 때문인지 곳곳에 물웅덩이 퍼져있었고 그와 함께 콤비를 이루는 커다란 돌들은 서서히 나의 저질체력을 바닥내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왜 아까 스쳐지나갔던 중년의 유럽피언 부부가 MTB 자전거를 빌렸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겠는데 가긴 가야지...그래도 가는 길 사이로의 풍경들이 너무 예뻐서 잠시나마의 안구정화로 자그만한 셀프위로를 한채 정처없이 앞만보고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중에 많은 소들도 보았는데 신기하게 얘네들은 "니는 니 갈길가라, 나는 내 갈길간다." 가는 느낌으로 항상 멀찌감치 나를 처다보고 있었다.  


  

  정처없이 패달을 밟다보니 어느순간 심장이 입밖으로 튀어나오기 직전까지 왔다. 진짜 자전거 버리고 뚝뚝이만 있으면 어떻게든 실려서 돌아가고 싶을때쯤 저멀리고 DSLR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노랑머리 서양인들을 발견했다. 

  그들 또한 다죽어가는 내 얼굴을 보는 순간 "keep going" "almost there" 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그들 덕분인지(?)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블루라군에 도착하게 되었다. 




  얼마였을까?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여튼 돈을 내고 들어간 입장권받아서 들어가게 된 블루라군   






  도착했던 시간이 대략 4시에서 5시 사이였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몇몇의 중국인 여행자들만 블루라군에서 물놀이하는 것을 포착했다. 

  나도 잠시 물속에 들어가볼까 생각했지만 나는 수영도 잘 못하고 구명조끼 또한 빌리는 곳을 찾지못해서 그냥 맥주한잔하며 사람구경이나 하며 쉬기로 맘먹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착하자 마자 너무 힘들어서 한병 시원하게 들이킨 비어라오



  

  아직 우기가 덜 지나서인가? 내가 생각했던 물색깔이 아니여서 꾸역꾸역 자전거를 타고 블구라군에 온 걸 조금은 후회했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인 것을...지금은 아마 여기에 한국 수영장같은 느낌 이겠지?



  잠시나마 비어라오로 목을 축이면서 쉬고 있는 타이밍에 불현듯 돌아가는 길에 대한 걱정이 내 머리속을 스쳤다. 특히나 도착했을 때가 오후5시쯤이였으니 지금 빨리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어둑어둑한 배경사이로 곳곳에 패어져있는 물웅덩이를 피해가며 자전거를 타야하기에 얼른 다시 출발을 해야했었다. 


  그러나 도저히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갈 엄두를 못내고 있던 와중에 한 뚝뚝이 아저씨가 나와 딜을 하기 시작했고 알고보니 이 뚝뚝이 아저씨는 어느 벨기에 가족이 고용한 기사였다. 

  속으로는 올레를 외쳤지만 겉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티가 나면 이 뚝뚝이는 절때 내가 제시한 가격에서 디스카운트를 안해줄것이라고 생각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아저씨와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딜에 성공! 결국 내 자전거는 뚝뚝이 천장위로 실려가고 내 몸은 벨기에 가족과 함께 실려갔다.  



  뚝뚝이를 타면서 든 생각은 만약 뚝뚝이를 안탔으면 가로등하나 없는 저 길거리에서 엉엉 울면서 한참 늦게 숙소로 돌아왔을(?)것이 아니고 길 한복판에서 울면서 못돌아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즉, 그만큼 어둠은 빨리 찾아 왔고 내가 이만큼이나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게 감격적일 만큼 먼 거리였다. 하여튼 오늘 하루는 빨리 가서 쉬어야한다. 왜냐면 방비엥의 하이라이트인 카약킹투어를 위해 체력을 비충해야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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